♥ ◈ 행 복 전 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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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 고독
오월의 안녕! 또는 오월의 부활?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문제는 현실이다.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젖가슴'이 증언하듯 그날의 핏빛 학살은 엄연한 현실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엄하다. 무엇보다 오월이 제기한 두 핵심적 과제는 미완으로 남아 있다.
먼저 미국의 존재다.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오월은 온몸으로 드러냈다. 분단체제와 독재정권 쪽에 미국이 서 있다는 역사적 진실을 피투성이로 증언했다.
저들은 1950년 충북 영동에서 민간인을 마구 학살했음은 물론 80년 오월의 학살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우리 겨레를 `들쥐'로 비유한 미국 장군의 인식은 그대로 이 땅의 여성을 노리개로 삼다가 엽기적으로 살해하는 미군의 만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미군은 성역 중의 성역이다. 포연에 묻힌 매향리를 보라. 아직도 여중생의 죽음은 뚜렷히 기억에 남아있다.
다른 하나는 실질적 민주화다. 오월의 무장항쟁이 없었다면 6월 대항쟁은 불가능했다. 군부는 사실상 오월을 통해 더이상 권력을 탐낼 만용을 잃었다.
그러나 어떤가. 우리는 그 해 오월의 민중들이 열망하던 민주주의를, 그날의 정의를, 오늘 구현하고 있는가.
아니다. 단적으로 5·18을 왜곡한 그 언론, 그 언론인들이 변함없이 언론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그날 그 순간처럼 친미·냉전논리의 확성기가 되어 여론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대미 관계의 주체적 재정립과 실질적 민주화라는 오월의 두 과제는 신자유주의 속에 하나로 모아진다.
지구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우리에게도 대량실업과 가정파괴로 구체화한 신자유주의 뒤에 다름 아닌 미국이 똬리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5·18 앞에 지금 혹 수사학이라 하더라도 안녕을 말할 때가 아니다.
시인 김남주는 노래했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풀잎은 흔히 민중의 대명사로 일컬어 왔다. 바람에 쉬 눕지만 곧바로 다시 일어서는 까닭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히 말한다.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죽은 시인의 시는 오늘 죽어가는 오월에 날카롭게 살아난다.
5·18이 풀잎으로 노래할 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꽃잎은 아니다. 하물며 모래시계나 박하사탕일 수 없다.
문화와 기념식으로 우리가 혹 참 오월을 잊는다면 이는 비극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일궈내고 민족이 하나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가파른 오월의 고독은 끝날 수 없다.
오늘 오월은 더 깊은 고독에 잠겨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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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뜻깊은 광주민중항쟁 25돌이 되는 날 입니다. ▒
미국을 배후에 둔 정권의 야만적인 탄압에 맞서 이 땅의 자주와 민주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걸고 항거한 의로운 반미,반독재,투쟁이 바로 518항쟁입니다.
◆ 5.18 민중항쟁 사건일지
1979.10.26 박정희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하여 피살,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전역 계엄령 선포
12.12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군부내에서 쿠데타를 일으킴.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장군 체포됨. 휴전선 전방부대가 불법으로 이동.
1980.4.14 혼미정국 계속되는 가운데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함과 동시 보안사령관 겸임을 유지 4월 중순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범위한 학원가 시위와 노동쟁의 시작됨. 5월 초순 데모 계속 확대, 계엄철폐와 전두환 퇴진 요구
5.15 서울중심가 5만명 시위, 신현확 총리 민주화 가속화 약속
5.16 광주금남로에서 3만명의 학생과 시민 평화적 시위 및 횃불 시위. 양김씨 데모자제 요구, 정부측 답변을 듣기로 함.
5.17 전국적인 계엄선포. 모든 정치활동 금지, 대학폐쇄, 정치인 재야 지도자 학생 등 체포구금
5.18 광주에서 1,500여명의 학생들 계엄철폐와 전두환 퇴진 요구 시위 시작. 공수부대에 의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십명의 사망자 속출
5.19 광주에 주둔한 군인들의 구타, 총칼질, 무자비한 진압, 학살이 시작됨. 시민들이 군인들의 만행에 충격을 받고 청년·학생에 합세, 이때부터 민중봉기 형태로 바뀜.
5.20 공수부대의 만행에 대한 소식이 퍼져나감. 10만 이상의 광주시민들 항거에 나섬.
5.21 30만명의 대집회 및 항거. 데모대 군차량 징발 및 무기획득. 군대 시내에서 철수. 전화통화 차단됨. 밤 12시경 시위대 도청 점령.
5.22 시민들 광주 장악. 1만여명 군대 광주외곽 포위. 시민위원회 구성, 군부와 협상시작. 전남 전지역으로 시위 확산됨. 수천명 사망설 퍼짐.
5.24 광주의 5만 시민 우중 시위 감행, 광주의 외곽출입 금지
5.25 3만시민 도청 앞 광장에 집결, 시민위원회의 입장 공식화를 위한 집회. 투항이냐 계속 투쟁이냐, 강온으로 갈라져 갈등이 심각해짐.
5.27 수천명의 군인이 탱크를 몰고 시내로 진입, 군부가 통제권 장악
5.28 수천명 체포 연행·구금·수배시작·김대중 등 사형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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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가
님을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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