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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3일 (월) 15:05 스포츠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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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그리고 결론은 은퇴
“사실 은퇴를 결정하고도, 1년만 더 뛸까란 유혹과 한동안 싸웠습니다. 골을 넣을 때마다 개인 통산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는데 선수로서 왜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지난해 팀이 우승을 했으면 좀 더 홀가분한 상태로 선수 유니폼을 벗었을텐데…. 하지만 오른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다는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김학범 감독님 밑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여건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어린 시절, 김주성의 왼발 드리블에 반해 틈만 나면 어깨를 벌리고 왼발 드리블을 익힘으로써 양발의 골 감각을 키웠던 골게터. 독일출신 크라머 감독의 지도로 발리킥을 익혀 한국 공격수 가운데 공중에서의 킥이 손가락에 꼽을 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폭격기’. 지난 1일 앙골라전에서 공식 은퇴식을 갖고 통영중 2학년부터 시작한 20여년간의 축구선수 생활을 모두 접은 그의 얼굴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편안해 보였다.
◇황선홍은 배움의 대상이자 장벽
시대를 잘 타고 났다면 충분히 국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의 한편에는 늘 ‘황선홍’이 자리하고 있다. 나이로는 두살차 밖에 안 나지만 바로 그 2년이란 시간 때문에 늘 동 시대를 대표팀과 프로무대에서 경쟁하며 보내야 했다. K-리그 114골로 역대 어느 공격수보다 많은 골을 넣고, 한국 국가대표팀에서도 역대 A매치 개인 골랭킹 5위에 해당하는 30득점을 하고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그에게 늘 아픔이었다. 바로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황선홍(50골·골랭킹 2위)과 늘 비교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팬들의 기대가 높은 대표팀 경기에서 인상적인 골을 기록하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황선홍의 대안’으로밖에 설 수 없는 한계도 작용했다.
“대화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왜 저를 ‘국대(국가대표 선수)용’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화가 납니다. 물론 월드컵이나 선수권대회에서 인상적인 골을 기록하지 못해 팬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표팀은 소속팀과 선수구성이 다르잖아요. 또 선홍이형과는 플레이 스타일도 다르고. 저는 한번도 선홍이형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항상 배움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서로의 스타일이 다른데, 스트라이커로서의 자질이 뒤떨어진다는 획일적 비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늘 부족해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프로경기보다 대표팀 경기에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골!”
김도훈을 기억하는 팬들은 두개의 골을 빼놓지 않고 말한다. 바로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벌어진 우크라이나와의 평가전에서 예측불허의 오버헤드킥으로 동대문운동장의 골망을 뒤흔든 장면과 99년 호나우두 등이 출전한 브라질전에서 슬라이딩 슛으로 결승골을 넣은 장면이다. 우크라이나전은 김도훈의 국가대표 데뷔전이었고, 브라질전은 아시아팀이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지금도 브라질을 이긴 아시아팀은 없다). 두 골 모두 한국축구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골로 기록됐다.
“우크라이나전 골은 내 인생을 바꿔놓은 골입니다. 당시 상무 소속으로 프로축구 드래프트 신청을 앞두고 있었는데, 1순위 후보로는 김태영 노상래 등이 꼽히고 있었습니다. 데뷔전 전반에 골을 넣지 못해 후반 교체를 걱정했지요. 그런데 비쇼베츠 감독이 후반에도 나가라고 해 찬스만 되면 반드시 때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영진이 뒤로 빼준 볼을 한정국이 오른쪽에서 올렸는데 본능적으로 오버헤드킥을 했습니다.브라질전은 후반 5~6분을 남기고 교체멤버로 들어갔는데 시간이 없었어요. 골 감각이 한참 좋을 때였는데 기회가 와서 골문 안으로만 넣겠다는 마음으로 미끄러지면서도 슛을 했습니다. 제 이름을 높인 경기였지요.”
◇충격과 아쉬움의 월드컵
2002월드컵 엔트리 탈락은 충격이었다. 히딩크호의 준비과정에서 골랭킹 선두를 다퉈 본선합류를 의심치않고 있던 상황이어서 더 충격은 컸다고 한다. 또 골을 넣고 이길 것만 같았던 98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서 골을 넣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운 경기로 꼽았다.
“지금도 내가 왜 탈락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기대를 안 했으면,실망도 크지 않았을 텐데. 2002월드컵 기간동안 무엇을 했는지도 잘 모를 만큼 멍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월드컵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소속팀에서도 갖가지 오해가 얽혀 제대로 뛰지를 못했어요. 2002년이 팬들에겐 행복한 추억이겠지만 제게는 악몽이었습니다.”
◇선수능력 끌어내는 지도자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두 명의 지도자를 잊지 못한다. 많은 지도자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을 일깨워준 차경복 성남일화 전 감독과 93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시절 센터포워드로서의 움직임을 가르쳐준 정종덕 건국대 명예감독을 인생의 큰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다. “선수 능력과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단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말하지 않아도 선수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장점을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공부하는 지도자로 소문난 김학범 감독님 밑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겠습니다.”
찰거머리 수비로 유명한 김태영이 국내 공격수 가운데 가장 마크하기 까다로웠다고 평가한 김도훈.혜성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팬들의 기억속으로 사라진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마자 일주일 전에 태어난 둘째 딸을 보기 위해 큰 딸 서영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는 어느덧 그라운드의 폭격기가 아니라 평범한 30대중반의 가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skp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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