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시절 빈 교실에서 흘러나온 풍금소리가 난 참 좋았다.
선생님 중 유난히 풍금 연주를 즐겨하신 분이 계셨다.
주로 유행가를 연주하셨던 그 선생님의 풍금소리는 방과 후 텅 빈 운동장까지
들렸고 어느 땐 연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창문 틈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풍금소리..
끊일듯 이어지는 풍금소리..
애잔하기도 했다
어린마음이 고독하기도 했다.
마음이 쓸쓸하기도 하였다..
여리고 가느다란 음색이 나의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자연스럽게 건반을 누르는 선생님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연주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화제 거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다 마음 두근거리며 풍금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더듬더듬하며
기껏 도레미파솔라시도...계명만 눌러보아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금..
풍금은 나의 어린 시절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 멋진 연주를 들러주었던 선생님은
나의 우상이었다.
난 기회만 되면 맞아 죽을 각오로 풍금을 만졌다.
풍금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친구들도 이해해주었다.
어쩌다 학교 관리인에게 들키면 야단과 더불어 얻어터지기도 하였다
다른 교실에서 풍금을 옮겨오는 일은 주로 당번의 몫이기도 하지만 거의 내 몫이기도
하였다.
그런 집착 때문이었을까
풍금실력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손으로 연주하다가 제법 반주까지 넣으며 두 손으로 연주하게 되었다.
나도 그 선생님만큼은 못하지만 서툴게나마 유행가를 연주하게 되었다.
나의 풍금연주는 조그만 시골학교에서 화제 거리가 되었던 같다.
쉬는 시간이면 고학년 선배들이 찾아와 풍금을 연주해 보라고 권하기도 하였고
내가 풍금 앞에 앉게 되면 자연히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빙 둘러 날 지켜보았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고향무정
바보같은사나이…….등
내가 즐겨 연주했던 곡들이다
풍금연주.
기법도 모르고 악보도 없는 그래서 연주랄 것도 없는 우스꽝스런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봄이면 바닷가 봄바람이 악보 되어 주고
여름이면 운동장 매미가 반주를 넣어주며
가을이면 가을바람에 부딪치는 나뭇잎소리와 어우러지며
겨울이면 세찬 북풍에 덜컥거리는 창문소리가 인도해주기도 하였다.
6학년 땐 군복무를 바로 마치고 학교로 발령받은 선생님께서 풍금을 다루는 게
서툴렀다
그래서 음악시간이면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불러댔고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풍금연주를 맡기셨다
졸지에 풍금연주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날 기억하는 친구들은 풍금연주자로 기억을 하고 있어 그 당시엔 예사롭지 않는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척박한 바닷가 농촌.
하루 세끼를 챙기기가 어렵던 시절.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절망만 앞에 놓인 시절.
하고 싶은 공부보다 일을 하도록 강요받던 시절.
가뭄과 기아
척박과 황폐
절망과 좌절
아무런 꿈도 꿀 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
풍금을 연주하는 것은 나에게 많은 현재에 대한 자신감과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하잘 것 없는 연주였지만 조그만 농촌지역에서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러 선생님들이 내 연주를 들어주었고 교장선생님께서도 칭찬을 하시며 도시로 전학을
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풍금과 나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없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식장에 있던 풍금을 끌어안듯 만져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중학교시절 음악실에서 처음 피아노를 만나게 되었다
피아노를 처음 만났을 땐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엔 열쇠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피아노연주는 꿈도 꿀 수 없고
대신 피아노 몸체만 조심스럽고 신기한 듯 만져 보는 게 내가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날 음악 시간이었다.
피아노에 채워진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난 흥분한 가슴을 억제 못하고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피아노 뚜껑이 열리고 난생처음 피아노 건반을 보는 순간이었다.
선채로 건반에 손을 얹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연주를 해보았다..
“미워도 다시 한 번 ”
피아노로 처음 연주했던 곡이었다. 전혀 피아노연주와 어울리지 않지만 풍금연주
하듯 연주하였던 것이다. 지금생각하면 우스꽝스런 일이었다.
세련된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쇼팽 등의 곡은 알 리가 없으니 ..
호기심에 같은 친구들이 피아노 쪽으로 몰러 왔고 어떤 이가 건반을 두드리며
방해를 놓자 동화라는 친구는 방해꾼을 주먹으로 갈기기도 하였다..
유행가연주는 친구들에게 호기심을 주었지만 결국 음악선생님에게 발각되었다.
음악선생님의 알 수 없는 분노..
내 가슴을 쓰리고하고 서럽게 한 선생님의 야단..
“이 녀석아 피아노를 치고 싶으면 집에서 쳐야지 ...” 선생님의 호통과 더불어
대 뿌리로 된 지휘봉이 뒤통수를 사정없이 가격하였다.
별이 보이듯 아픔이 골수에 사무친듯했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왔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가슴의 통증이었다.
애써 참았던 울음과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 ! 참을 수 없는 창피함과 부끄러움 ...
나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꺾이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난 피아노와 완전한 작별을 고하였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그 후 난 피아노든 음악이든 완전히 절연된 생활을 하였지만 어쩌다
길가다가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며
관심 갖는 걸 보면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용기 내어 아이들 보는데서 피아노를 쳐보면 아이들이 낄낄 되었다
아이들이 듣기엔 참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피아노에 손대는 것은 참 망설여졌다
더 이상의 용기를 발휘할 자신감이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아이들에게 멋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다.
마음조리며 피아노학원을 기웃거렸다 그 횟수만 하더러도 몇 번이지 모른다.
어느 날 아이들이 자기들 방에서 날 불러 방을 들어갔다.
아이들이 피아노연주가 들어있는 CD를 틀어놓고 있었다.
그 중 한 놈이 나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 아빠 잘 들어 보세요 저곡 너무 멋지죠? ”
음악을 듣는 아이들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난 돌아서서 뇌까렸다.
“ 그래 너흰 좋겠다.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으니 ”
사람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아를 위해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아이들이 농가적 정서를 느끼지 못해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되씹어 본다. 과연 그들이 불행하다고 느낄까..
풍금이든 피아노든 죽도록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보지도 못해 내 음악적
재능이 싹도 펴지도 못하고 말라 비틀어져 버렸던 농가적 시절이 나에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어릴 적 들었던 풍금소리가 은은하게 귓가에 맴돈다
선생님 중 유난히 풍금 연주를 즐겨하신 분이 계셨다.
주로 유행가를 연주하셨던 그 선생님의 풍금소리는 방과 후 텅 빈 운동장까지
들렸고 어느 땐 연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창문 틈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풍금소리..
끊일듯 이어지는 풍금소리..
애잔하기도 했다
어린마음이 고독하기도 했다.
마음이 쓸쓸하기도 하였다..
여리고 가느다란 음색이 나의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자연스럽게 건반을 누르는 선생님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연주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화제 거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다 마음 두근거리며 풍금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더듬더듬하며
기껏 도레미파솔라시도...계명만 눌러보아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금..
풍금은 나의 어린 시절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 멋진 연주를 들러주었던 선생님은
나의 우상이었다.
난 기회만 되면 맞아 죽을 각오로 풍금을 만졌다.
풍금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친구들도 이해해주었다.
어쩌다 학교 관리인에게 들키면 야단과 더불어 얻어터지기도 하였다
다른 교실에서 풍금을 옮겨오는 일은 주로 당번의 몫이기도 하지만 거의 내 몫이기도
하였다.
그런 집착 때문이었을까
풍금실력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손으로 연주하다가 제법 반주까지 넣으며 두 손으로 연주하게 되었다.
나도 그 선생님만큼은 못하지만 서툴게나마 유행가를 연주하게 되었다.
나의 풍금연주는 조그만 시골학교에서 화제 거리가 되었던 같다.
쉬는 시간이면 고학년 선배들이 찾아와 풍금을 연주해 보라고 권하기도 하였고
내가 풍금 앞에 앉게 되면 자연히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빙 둘러 날 지켜보았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고향무정
바보같은사나이…….등
내가 즐겨 연주했던 곡들이다
풍금연주.
기법도 모르고 악보도 없는 그래서 연주랄 것도 없는 우스꽝스런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봄이면 바닷가 봄바람이 악보 되어 주고
여름이면 운동장 매미가 반주를 넣어주며
가을이면 가을바람에 부딪치는 나뭇잎소리와 어우러지며
겨울이면 세찬 북풍에 덜컥거리는 창문소리가 인도해주기도 하였다.
6학년 땐 군복무를 바로 마치고 학교로 발령받은 선생님께서 풍금을 다루는 게
서툴렀다
그래서 음악시간이면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불러댔고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풍금연주를 맡기셨다
졸지에 풍금연주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날 기억하는 친구들은 풍금연주자로 기억을 하고 있어 그 당시엔 예사롭지 않는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척박한 바닷가 농촌.
하루 세끼를 챙기기가 어렵던 시절.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절망만 앞에 놓인 시절.
하고 싶은 공부보다 일을 하도록 강요받던 시절.
가뭄과 기아
척박과 황폐
절망과 좌절
아무런 꿈도 꿀 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
풍금을 연주하는 것은 나에게 많은 현재에 대한 자신감과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하잘 것 없는 연주였지만 조그만 농촌지역에서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러 선생님들이 내 연주를 들어주었고 교장선생님께서도 칭찬을 하시며 도시로 전학을
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풍금과 나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없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식장에 있던 풍금을 끌어안듯 만져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중학교시절 음악실에서 처음 피아노를 만나게 되었다
피아노를 처음 만났을 땐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엔 열쇠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피아노연주는 꿈도 꿀 수 없고
대신 피아노 몸체만 조심스럽고 신기한 듯 만져 보는 게 내가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날 음악 시간이었다.
피아노에 채워진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난 흥분한 가슴을 억제 못하고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피아노 뚜껑이 열리고 난생처음 피아노 건반을 보는 순간이었다.
선채로 건반에 손을 얹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연주를 해보았다..
“미워도 다시 한 번 ”
피아노로 처음 연주했던 곡이었다. 전혀 피아노연주와 어울리지 않지만 풍금연주
하듯 연주하였던 것이다. 지금생각하면 우스꽝스런 일이었다.
세련된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쇼팽 등의 곡은 알 리가 없으니 ..
호기심에 같은 친구들이 피아노 쪽으로 몰러 왔고 어떤 이가 건반을 두드리며
방해를 놓자 동화라는 친구는 방해꾼을 주먹으로 갈기기도 하였다..
유행가연주는 친구들에게 호기심을 주었지만 결국 음악선생님에게 발각되었다.
음악선생님의 알 수 없는 분노..
내 가슴을 쓰리고하고 서럽게 한 선생님의 야단..
“이 녀석아 피아노를 치고 싶으면 집에서 쳐야지 ...” 선생님의 호통과 더불어
대 뿌리로 된 지휘봉이 뒤통수를 사정없이 가격하였다.
별이 보이듯 아픔이 골수에 사무친듯했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왔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가슴의 통증이었다.
애써 참았던 울음과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 ! 참을 수 없는 창피함과 부끄러움 ...
나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꺾이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난 피아노와 완전한 작별을 고하였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
그 후 난 피아노든 음악이든 완전히 절연된 생활을 하였지만 어쩌다
길가다가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며
관심 갖는 걸 보면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용기 내어 아이들 보는데서 피아노를 쳐보면 아이들이 낄낄 되었다
아이들이 듣기엔 참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피아노에 손대는 것은 참 망설여졌다
더 이상의 용기를 발휘할 자신감이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아이들에게 멋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다.
마음조리며 피아노학원을 기웃거렸다 그 횟수만 하더러도 몇 번이지 모른다.
어느 날 아이들이 자기들 방에서 날 불러 방을 들어갔다.
아이들이 피아노연주가 들어있는 CD를 틀어놓고 있었다.
그 중 한 놈이 나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 아빠 잘 들어 보세요 저곡 너무 멋지죠? ”
음악을 듣는 아이들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난 돌아서서 뇌까렸다.
“ 그래 너흰 좋겠다.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으니 ”
사람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아를 위해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아이들이 농가적 정서를 느끼지 못해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되씹어 본다. 과연 그들이 불행하다고 느낄까..
풍금이든 피아노든 죽도록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보지도 못해 내 음악적
재능이 싹도 펴지도 못하고 말라 비틀어져 버렸던 농가적 시절이 나에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어릴 적 들었던 풍금소리가 은은하게 귓가에 맴돈다
출처 : 풍금소리
글쓴이 : 덕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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