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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 모두가 가꿔야 할 K 리그..

비탈- 2007. 10. 9. 11:22
2007년 10월 09일 (화) 10:40  플라마
 
 
우리 모두가 가꿔야 할 K 리그
 
 
 

[플라마]

첫 만남, 첫사랑, 첫 키스...처음이란 단어의 설레임 때문인지 누구나 처음에 대한 기억은 아주 오래 간직되는 거 같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를 따라 축구장을 갔던 날은 대우 로얄즈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어릴 적 포항에서 자란 그 친구는 이동국의 팬이었다. 이동국, 안정환, 송종국 등의 이름을 나열하며 축구장을 가자는 친구의 얘기가 솔깃하게 들렸고, 다음날 나는 꼬깃꼬깃한 용돈을 챙겨 축구장으로 향했다. 그날 축구장의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친구는 이동국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옮겨다니며 경기를 봤고, 나 역시 들려오는 환호소리를 뒤로한 채 친구를 따라 정신없이 자리를 옮겨다녀야 했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선수단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쳐있던 나는 그곳에서 좋지 않은 첫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 험한 욕설과 함께 머리 위로 콜라를 뿌렸던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 아주 오랫동안 축구장을 찾지 않았다. 안정환과 이동국 외에 누가 뛰었는지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축구를 보고 왔지만, 나는 그날 이후 축구는 TV로 시청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처음에 대한 나쁜 기억이 내가 축구장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음이라는 날카로운 기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 좋은 선입관으로 형성되어 자신을 구속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좋은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처음에 대한 기억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 9월 30일 탄천종합운동장. 치열한 K 리그 경기가 펼쳐졌던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처음'이라는 기억으로 남을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인천과의 경기가 1-1로 끝난 후 성남 선수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반 관중석으로 가서 인사를 하고 서포터석을 돌아 선수 출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경기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않아서인지 선수들은 환호하는 꼬마 팬들을 뒤로 한 채 빠른 걸음으로 선수 출입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몇몇 선수가 인터뷰를 끝내고 뒤늦게 선수 출입구 쪽으로 다가왔고 기다리던 꼬마 팬들은 또다시 짧은 팔을 뻗어가며 들떠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꼬마 팬들 앞을 지나가던 김상식은 차마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짧게 손을 내밀었다. 그 사이에 한 꼬마 아이가 재빠르게 손을 뻗어 김상식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며 사진을 찍던 나는 아직도 그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김상식의 손을 잡았던 꼬마 팬은 이후에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날 일을 자랑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남과 김상식 그리고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TV로만 보던 축구 스타와 악수를 나눈 어린 아이의 그 기분이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진 속 꼬마 팬에게는 저 짧은 순간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좋지 않은 기억으로 오랫동안 축구장을 잊었던 것과는 반대로, 김상식의 손을 잡았던 꼬마는 축구장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앞으로도 계속 축구를 사랑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처럼 처음, 혹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형성된 가치관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 사진 속의 아이가 자라나 인천의 서포터즈가 된다면 그 누구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이후 K 리그 경기장은 일시적으로 관중이 늘어났었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불어났던 숫자는 점차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일 월드컵 이후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K 리그 경기장을 처음으로 찾았던 사람들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 대표팀 경기를 기다리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연맹을 비롯한 각 구단은 이때 처음으로 축구장을 찾은 팬들을 어떻게든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난 2006년엔 또다시 월드컵 시즌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2002 월드컵의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왔다. TV 광고는 축구를 소재로 다룬 것밖에 없었고, TV 프로 또한 온통 축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정치인도 연예인도 모두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나와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이후 축구를 찾는 사람은 그때의 절반도 안 된다. K 리그 경기를 생방송으로 공중파에서 중계하는 경우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왔던 그 많은 사람에게 축구는 '월드컵'밖에 없는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1년이 지난 지금 작년보다 K 리그를 찾는 팬들의 발걸음이 20%가량 증가했고, 현재까지도 그 숫자가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기장을 처음 혹은 다시 찾고 있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얘기와도 같다.

그렇다면, 새롭게 경기장을 찾은 20%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K 리그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들 중에는 승패를 떠나 선수들의 모습을 가까이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 연인끼리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나들이 오는 공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정말 축구를 사랑하게 된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늘어난 K 리그 팬들에게는 축구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경험이 필요하다. 꼬마 아이가 김상식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축구장에서의 좋은 기억이 될 만한 처음의 기억이 필요한 것이다. 나처럼 욕설을 듣거나 콜라 세례를 받게 된다면 다시는 축구장을 찾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축구장에서는 처음의 좋은 기억과 가치관 형성은커녕, 오히려 경기장을 찾은 초보 팬들을 내쫓을 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매 경기 빠짐없이 불거져 나오는 심판 판정에 대한 문제와 선수들의 경솔한 행동, 그리고 선을 넘은 서포터즈의 항의, 그리고 계속되는 연맹의 솜방망이 처벌까지. 아무리 덮어두고 넘어가려 해도 이제는 일이 너무 커져 버린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K 리그를 처음 접한 20% 팬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다시 K 리그를 위해 경기장을 찾아줄까?

 

이제는 모두가 반성하고 다시 일어서야 할 때이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가에 대한 문제를 떠나서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선수는 선수 본연의 자세를 잊지 않고 경기에 임해야 하고, 심판은 조금 더 정확한 판정으로 낮아진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 프로축구연맹 또한 상황에 적절한 수준의 처벌과 징계로 지금까지의 감싸주기 식 자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경기장을 찾은 축구팬들이 TV 앞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들로 다시 축구팬들이 K 리그를 외면하게 된다면, 우리는 월드컵 때만 뜨거워지는 축구 열기를 또다시 허탈하게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K 리그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곧 정규 리그가 끝나고 더 많은 팬의 관심을 불러올 플레이오프가 시작될 것이다. 2007년 남아 있는 K 리그에서는 처음, 혹은 꾸준히 우리의 축구를 사랑한 팬들에게 더 이상 실망을 주는 모습들은 없었으면 한다. K 리그는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계속되며 발전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축구'이기 때문이다.

 

[플라마 l 구윤경] bjandme@eflamma.com

 

가장 깊고 맑은 축구이야기, 대한민국 축구의 불꽃 - 축구공화국 | 플라마

출처 : 우리 모두가 가꿔야 할 K 리그..
글쓴이 : 비탈 이병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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