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12일 (수) 06:27 스포탈코리아 |
야유를 응원 문화에서 완전히 배척해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사실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내 팀의 선수를 향해 들어오는 위험한 반칙이나, 공정하든 편파적이든 내 팀에 불리한 심판의 판정에 화를 내며 분풀이를 하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네거티브 응원을 한다고 해서, 축구장 관중석에 앉아 상대팀에게 야유를 보내는 축구팬 모두를 싸잡아 '유럽에서 흘러든 천박하고 몰상식한 응원문화를 몸소 실천하는 호기심 강한 철없는 집단'이라고 매도하지는 않습니다.
|
우리에겐 상식의 잣대, 라는 엄연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서 전 국민에게 배포한 것도 아니지만, 이 상식의 잣대가 갖고 있는 힘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큽니다. 우리가 큰 불안을 느끼지 않고 길을 걷는 것은 타인이 대체로 나에게 악의를 품지 않았으며, 행선지로 향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존중할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믿는 이 선의는, 우리를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며, 이것이 상식입니다.
이름을 가져다 붙이면 모두 네거티브이지만, 우리의 상식선에서 허락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과도하게 네거티브한, 인신공격과 조롱을 일삼는, 직업인으로서 경기장 안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에게 물리력을 쓰지 않았다하더라도, 경기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유발시킬 만큼의 네거티브는 분명히 지양되어야 하며, 이는 명백히 룰을 넘어선, 상식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기본 원칙, 인간에 대한 예의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는 열정과 동시에 냉정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선수들을 보세요. 그들이 90분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심폐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하고, 근육이 뒤틀리거나 찢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믿어지지 않는 인내력을 요구받기도 하는 그 90분을 뛰고 있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 90분 안에 돈과 명예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물이 그러할 뿐, 선수가 뛰고 있는 것은 그 곳에 잔디가 있고, 공이 있고, 그물이 있고, 관중들의 함성과 뛰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강력한 이유가 되어줄 것입니다.
오로지 단련된 몸과 발끝, 열망과 정신력에서 비롯되는 헌신이 결합하여 공이 그물을 흔들 때의 그 뜨거움, 그것이 오늘날, 누캄프에, 올드 트래포드에, 산시로에 수만 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축구를 단순한 공놀이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이 단순한 뜨거움에 기인합니다. 인류의 원형질에 가까운 이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났으며, 피와 총성이 없는 전쟁의 대리만족일 뿐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월드컵이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고, 가난한 자나 부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어린이나 늙은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언어로 거듭난 것은 이 뜨거움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 때문 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쩔 수 없는 열정을 제어하는 것 또한 우리의 그라운드 위에 있습니다. 심판 말입니다. 이들은 이기고자 하는 욕구는 반드시 정당한 방법과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존재들입니다. 축구가 이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페어플레이, 공정함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 또한 우리의 축구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 안에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축구의 열정과 냉정을 축구팬들만큼은 쉽게 제어해내지 못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애정은 늘 과도함을 불러오기가 쉽다는 것을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축구는 종종, 우매하고 동요하기 쉬운 군중들의 스포츠로 오인 받곤 합니다.
우리는 그 열정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선수의 인형이 매달리고, 유니폼이 찢어지고, 물병이 날아들고, 상대팀을 응원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의 대상이 되는 장면들을 슬프게도 모두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해왔고, 반성을 요구해왔으며, 우리 스스로 그러한 일이 두 번 다시는 발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연대감을 가지고 경계해왔습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상대팀에 대한 무례함이 반대급부로 팀에 대한 애정으로 돌변하는 이상한 메커니즘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주지해야 할 점은, 상대팀 선수를 향해 내뱉는 욕설과 원색적인 비난과 입에 담기 힘든 거친 욕들이, 마치 내 팀을 향한 순수한 애정의 발현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비겁하며, 내 팀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고리타분하고, 흔하고, 전형적이며, 지루하기까지 한 이야기이지만, 사랑하는 것을 앞에 두고, 그것의 이름을 내걸고 비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사랑은 거짓입니다. 만약 누군가, 팀에 대한 열정 때문에 벌어진 우발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라고 변명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열정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인격이 마비되어 일어난 일이라고 말입니다.
선수는 팬을 존중하고, 프로선수에 걸맞는 행동을 하여야 하며, 때로는 부당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야유도 견뎌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원과 서울의 2군 경기에서 나온 퇴장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정환 선수는 그가 유명인이라는 사실 만으로, 그가 수원 유니폼을 입은 상대팀 선수라서, 경기에서 골을 넣었고, 컨디션 난조로 2군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인신공격을 받아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구단이 그에게 지불하는 몸값에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며 무차별적인 비난을 견뎌야 하는 대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혹여, 상대팀의 선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원색적인 욕을 퍼붓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부도덕이지, 팀이 개인에게 가져다준 카타르시스가 아닙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릅니다. 축구는 폭력적인 것입니까? 그때는 유일신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처럼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난감함에 빠질 것입니다. 다시 물을지도 모릅니다. 축구는 정직합니까? 축구는 선량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을 지라도, 적어도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축구를 폭력적으로 만들고, 우매하게 만들고, 비열하고 지저분한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선택 말입니다. 내 팀의 선수를 존중하듯이 상대 팀의 선수 또한 존중하며, 경기를 즐기는 즐거움을 누리는 범위 안에서의 야유와 안타까움의 탄식, 승리를 찬양하는 노래와 패배를 슬퍼하는 눈물, 깨끗한 승리와 패배를 위한 아낌없는 박수, 그것들을 선택할 자유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부분, 이러한 선택을 하고, 골대 뒤에서의 책임과 자유를 누리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보았고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번 일이 안정환 선수가 K리그 경기장에서 제 기량을 팬들에게 보여주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었던,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지 모를 그 순간의 행복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글=조혜연(스포탈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SF1080-성남F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TOP 100골 스페셜.. (0) | 2007.10.14 |
---|---|
[스크랩] 우리 모두가 가꿔야 할 K 리그.. (0) | 2007.10.09 |
피스컵 경기 일정, 경기장, 티켓예매 링크, 정보.. (0) | 2007.07.08 |
[박주광의 EPL인물]박지성보다 먼저 EPL밟은 우희용씨,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 (0) | 2007.06.09 |
[2007피스컵코리아] 조편성 및 경기일정.. (0) | 2007.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