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공기, 물, 흙은 하늘이 내린 생명의 원천이다. 생명의 ‘기룸’과 ‘살림’의 원천인 이것들을 우리네 조상들은 상서로운 신의 혜택으로 여겼다. ‘비님’이 오신다거나 ‘햇님’이 비춘다거나 ‘어머니 대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거저 쓰는 대상이 아니라 ‘모시는 대상’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侍의 대상은 이것들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내 몸에 하늘 님을 모시었으니(侍天主) 사람이 곧 하늘이자(人乃天)만물이며 만물이 나요, 하늘이었다(物物天 事事天). 생명과 평화의 열쇳말인 ‘모심과 살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사상이다. 참으로 위대하다.
빛 공해(light pollution)란 말이 있다. 빛도 잘 못쓰면 공해가 될 수 있다. 물, 공기, 흙의 오염이란 말에 비해 다소 생소한 ‘빛공해’란 용어는 우리에게만 낯설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용어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빛의 오남용으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서둘러 빛공해 방지법을 만들었다. 빛(조명)의 잘 못 쓰임을 법으로 규제해왔다. 독일의 카네기연구소 연구팀은 “빛을 이용해 성장하는 식물은 많은 광수용체를 진화시켜왔다”며 “사람의 눈으로 느낄 수 없는 빛의 작은 변화에도 식물은 발아, 줄기와 잎의 성장, 개화, 열매 성장이 큰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가 여름에 피고 봄에 피는 것을 수시로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곳 주변을 잘 살펴보면 어김없이 가로등 주변이나 인공조명이 비춰지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여름밤에 우는 매미 때문에 고통을 받은 적이 있다. 인공조명으로 인해 매미가 밤을 낮으로 착각하고 지속적으로 울게 된 것이다.
사람을 비롯해 모든 동. 식물들은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다. 이 생체리듬은 인공불빛에 의하여 혼돈이 야기되며 동. 식물의 생육은 물론 생리. 생식활동에도 지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빛 공해 방지법’을 만드는 나라로 미국, 칠레, 호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생물공간에서는 인위적인 간섭들로 인한 수많은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으나 관찰되지 않는 현상들은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하고 있다. 인공조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현상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더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결론은 생태계 교란은 끊임없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부산 환경단체에서 조명공해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부산시에 인공조명 설치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른 지역의 환경단체들도 도심의 가로등이나 하천 주변의 불필요한 조명 설치는 생태계의 심각한 교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바야흐로 빛 공해에 대한 인식의 반증이며 환영할만하다.
보성군청은 올해도 ‘2007 보성차밭 빛의 축제’를 하려는 모양이다. 석 달간 수 억 원의 예산을 들여 수 만개의 전구를 차나무에 매달아 밤을 밝히려는 계획인 것 같다.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 트리로 기네스 북에 올랐다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보성군청의 야심찬 노력(?)이 가상하다. 보성차밭 빛의 축제는 누구의 발상인지 그야말로 무지의 산물이다. 생물에 전구를 달아놓고 세계 최대라고 떠드는 보성군청의 이 몰지성 앞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공개입찰을 공시한 공문은 더 가관이다. 빛 구조물 설치 조건으로 ‘친환경적인 구조물일 것’이란 대목에서는 보성군의 무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떻게 인공 빛 구조물이 친환경적일 수 있을까. 얼마 전 보성지역이 공황상태에 빠져있을 시기에 보성군수와 문화계 관계자들이 선진지 관광 인프라를 견학하러 호주로 외유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분노를 샀다. 그만큼 중요한 방문이었다면 거기서 그들은 뭘 보고 배워왔을까. 궁금하다.
茶는 문화이다. 茶道란 차를 심고(栽茶), 찻잎을 따고(菜茶),차를 만들고(製茶), 차를 저장하고(貯茶), 차를 마시는(行茶)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다. 땅의 기운을 살려 차나무를 기르되 온갖 해로운 것으로부터 피해야하고 정성을 다해 차를 만들어 마시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차나무를 풀의 성현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차의 성정을 무시한다면 차는 문화의 요소가 아닌 단지 ‘마실 거리’의 재료쯤으로 남을 것이다. 보성은 차의 이런 문화적인 속성을 이용해서 가장 큰 혜택을 누려왔다.
그렇잖아도 보성녹차에서 유해성분(농약성분)이 검출되었다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가뜩이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 나중에 보성군청의 노력으로 여러 의혹들이 해소되긴 했지만 한번 언론에 매를 맞고 나면 의심의 눈초리는 쉬 사라지기 어려운 법이다. 빛의 축제가 열릴 장소(회천면 영천리)에서 친환경 선포식까지 하면서 이미지 극복을 위한 절치부심하는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 와중에 여러 사건이 터지고 연이어 보성차밭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겠다는 허접한 발상은 다시 반 생태적인 논란에 휩싸일 소지가 충분하다. 이제라도 보성군청은 2007 보성차밭 빛의 축제를 철회하고 그 예산으로 친환경 사업과 관광객 편의 등 녹차수도에 걸맞는 관광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길 바란다.
자, 올 겨울엔 보성차밭에 불을 끄고 별을 켜보자!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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