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시장에서 만난 회천 아짐들
“세비 쭈끼미 많이 주께, 사세.
맛이랑 사. 시원하니 좋아.”
“깔지 몰라요.” (필자)
“까진 놈 사세, 많이 줘.”
“내일 살 건데” (필자)
“냉장고 넣어 놨다 잡사. 괜찮아. 암시랑토 안해.”
“이것 얼마다요?” (필자)
“숭에 세 마리 오천원만 줘. 오천원이면 괜찮아제”
“낙지는 얼마다요?” (필자)
“여섯 마린디 사천원썩 줘”
“비싼디” (필자)
“워메, 환장하것네. 오천원씩 팔았당께.”
“어디서 이렇게 잡아다요?” (필자)
“회천 군농 바다에서 잡았제. 아짐씨, 돔이랑 낙자랑 사시오. 낙자 징하게 야물어. 뻘밭에서 잡아 저녁에 씻고 간수 잘해 아척에 왔당께.”
이른 새벽잠을 떨치고 ‘매일 시장’ 앞으로 나간다. 이곳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대며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농협중앙회 앞에서부터 읍사무소 앞까지 아주머니들이 줄줄이 앉아 손님들을 부른다. 대야마다 미나리, 돌나물, 머위대 등 채소부터 고막, 바지락, 숭어, 조기, 쭈꾸미 등 해산물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대부분 전문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이기보다는 직접 키우거나 잡은 농부나 어부들이다.
대형 마트나 슈퍼마?이 갈수록 늘어나 재래시장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보성읍은 아직도 길거리장이 날마다 서고, 여기저기에 시골의 정감이 남아 있다. 대형마트에는 깔끔하게 포장된 갖가지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수입산․자연산인지 구별되지 않고, 중간 이윤을 많이 남긴다. 겉보기에는 깨끗하고 싱싱해 보이지만, 참으로 오염이 안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쉽게 간다.
그러나 부지런하게 조금 일찍 일어나 길거리 새벽장에 나오면, 자연산인 깨끗하고 싱싱한 식품을 사기도 하거니와, 슈퍼마?에서 저울로 달아 파는 것과는 달리, 손끝 인정에 따라 싸고 푸지게 살 수 있고, 무엇보다도 사람 만나는 푸근한 정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보성에는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득량만이 있어, 새벽마다 어부들은 밤새 잡은 고기를 팔러 나온다. 이렇게 싱싱한 해산물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보성에서 사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는 게, 고막, 양태, 돔 등을 화순, 광주로 사 가지고 간다.
특히 신지도가 고향인 나는 갯것만 보면 언제나 그리운 추억에 젖는다. 어려서는 조개껍질을 주워 모으고, 자라면서는 자갈 헤집어 가면서 호미로 바지락 캐고, 바위에 붙은 굴 조쇠로 까고, 바닷물속에 들어가 우렁고동 건지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굴회를 특히 좋아하셨지. 명절 때만 되면, 자갈밭에 하얗게 앉아 바지락 캐던 동네아주머니들… 사람들은 떠났어도 그 바닷가 그 자갈밭은 그대로 있겠지.
나는 자연스럽게 해산물 파는 곳으로 향한다. ‘서이집’ 앞에서, 어제 밤에 회천 앞바다에서 잡았다는 숭어, 돔, 조기, 장어, 낙지, 맛 등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 옆에 쭈그리고 앉는다. 싱싱한 숭어는 푸른빛이 돌고, 낙지는 통에 담긴 바닷물 속에서 꾸물거리며 긴 다리를 이리저리 뻗어댄다.
손님들이 물건을 살피며 지나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물건 사라고 소리쳐 부르는 소리가, 차소리에 섞인다.
“난 절에 다닝께라우.”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를 아마도 교회에서 전도하러 나온 사람으로 알았던 것일까!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필자)
“그래도 딴 데 가서 물어보랑께. 아척밥도 안 묵고, 이녁이 올 때까지 우리 영감 차에서 기다리고 있겠구만. 괴기 폴랑께 겨를이 없어.”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내게, 빨리 물건 팔고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하긴 계속 손님이 오는데,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 달라 하기가 미안해진다.
회천 군농에서 사신다는 이상례 씨(61세). 경치가 아름다운 노동에서 태어나 회천으로 시집 와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회천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아들 셋 다 결혼해 서울에서 살고 있어, 현재 두 내외만 남아 있다. 농사 지으며 바다에서 고기 잡아 생계 꾸려오고 아이들을 다 가르쳤다. 고기 잡아 내다 팔고, 감자와 파 심고, 집안 일도 하기 때문에 늘 바쁘다.
“겨울에는 하지 감제를 심그고, 봄에는 모를 심제라. 12월에서 1월달에 씨감제를 심그고, 2월에는 바닷일에 들어가제라. 쫌 있으면 감제를 캘 것이요. 회천에서는 감제와 파가 유명하제. 황토밭에서 캐니 맛도 좋아 누구나 알아 줄 것이요. 5월말에서 6월에 감제를 캐고 나서 콩․깨 같은 여름 수확을 다하고 나면, 음력 7월달에는 파를 심제라. 40일에서 50일쯤 지내면 파작업에 들어가 뽑아내제라. 그러면 다시 감제 북 심는 12월이 된당께요.”
바닷일만 하면 훨씬 쉽지만, 1년 내내 계속 되는 농사일에 집안일까지 하면 늘 시간도 없고 엄청나게 힘들단다. 그래서 희망과 욕심이 없으면 그 많은 일을 하면서 버티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잘 살고 있어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아주머니 얼굴이 환하다.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아래로 내려가다 아는 분을 만났다. 회천중에 있을 때 가르친 세화 학생 어머니다. 앞에 낙지, 바지락, 새조개 등을 대야 가득 담아 놓고 팔고 계신다. 나이는 37세. 나이에 비해 마음이 실하고 넉넉해 보인다. 세화 어머니는 장흥에서 태어나 회천으로 시집 와 역시 밭일을 하며 바닷일을 하느라 늘 바쁘고 힘들단다.
보통 밤 9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전날이나 밤에 잡은 생선을 팔러 나온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거나 공부를 도와주기는커녕 아침밥도 함께 먹기 힘들다.
“세화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동생 머스마가 도시락 다 싸놓고, ‘누나야 학교 가게 일어나라’ 하고 깨워서 아침 챙겨 먹고 다녔다요.”
부모가 바빠서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주지 못해도,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주어서 대견하고 고맙단다. 올해 세화는 대학생이 되었다.
“통신표를 보면 ‘우’ 하나 없는 애인디, 올해 수능이 어려워서 370점을 예상했다가 못나와, 재수를 할까 하다가 간호학과에 들어갔다요. 정말 아까워라우.”
세화는 회천중학교에서, 야무지고 마음이 넓어 친구들을 잘 이해하고 공부도 잘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다른 면단위 학교에 비해 학생들은, 회천이 관광지가 되어서 그런지, 공부보다는 유행에 더 민감하고 언어 사용이 거칠었다. 그러나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은 강인하고 부지런하여 밤낮으로 열심히 바다에서 밭에서 일하였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부모를 본받도록 자주 말하곤 하였다.
“회천 어머니들은 정말로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존경스러워요. 처음 회천에 가서 가장 놀란 점이예요.” (필자)
“고생은 말도 못해라우.”
“학생들이 이런 훌륭한 부모님을 10분의 1만이라도 본받으면 좋을텐데요.” (필자)
“그래도 회천 애들 중에 빗나간 애들이 없어라우. 율포 우암 아이들 몇 명만 빗나가고 껄렁껄렁 하제. 농사 짓고 바닷일 하는 집 애들 중에 빗나간 아이들이 없어라우.”
아이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세화 어머니 마음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기를 찾는 사람이 오늘 따라 많구만. 기 사러 온디, 기가 있어야제.”
“기를 좀더 짱짱하게 처음부터 부를건디 그랬구마.”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하자, 세화 어머니 맞장구를 치며 웃음을 ‘하하하’ 시원스럽게 웃는다.
“게는 잡히는 물때가 따로 있나요?” (필자)
“기는 발에도 들어 있고, 낙지 잡는 통발에도 들어 있고, 개인이 뻘바닥 물 나면 잡기도 하고, 겨울부터 봄까지 있제라.”
낙지 사 간 아주머니 한 분 되돌아 와 말한다.
“낙지가 힘이 없네이. 죽어부렀는 갑다.”
“요새는 언니, 날이 따뜻해질수록 개구리낙지는 죽네이.”
‘개구리낙지란 어떤 낙지일까’ 궁금했지만, 세화 어머니 바빠서 물어보지 못했다. 손님이 가고 다시 여유가 생겨 다시 말을 붙인다.
“낙지는 하나하나 다 잡은 거예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뻘밭에서 구덩이를 깊이 파고 잡던데, 한 마리 잡기에도 힘들겠데요.” (필자)
“우리 집에서는 어장으로 잡제라. 때로는 직접 뻘밭에서 잡기도 해라우”
손님이 온다.
“반지락 깨끗해요?”
“반지락에 독 안 들었어라우. 얼마치 살라요?”
“3천원만 주세요. 그런데 정말 맛은 있어요?”
“내가 자신하고 팔제. 우리 동네 앞 바다에서 딴 것인디. 젊은 사람이 오늘 장사하고 내일 안할거라고 거짓말 할것이요? 나 딱 기억해 났다가 다음에도 사러 오라고. 내가 누군지 모르면 간첩이제. 몸집 크겠다 시원하겠다. 알아볼라면 얼마든지 알아보제. 이 반지락은 아무것도 안 넣고 소금만 넣어도 시원하고 맛 있당께요. 한주먹 더 넣어 주요.”
“어떻게 해야 반지락 모래를 없애요?”
“소금물에 한두 시간 당가두시요. 아조 짜도 입을 안 영께 쪼끔 넣으면 될것이요.”
“이것은 무엇이에요?” (필자)
말하면서도 연신 큰 조개를 까는 세화 어머니에게 물으니 '새조개‘란다. 바지락은 2-3년 살아도, 새조개는 단년생이고 자연산이어서 비싸단다. 아침장에 나오니 이렇게 싱싱한 자연산 해산물을 먹을 수 있구나.
날이 벌써 환해진다.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손님 부르는 세화어머니 펄펄 뛰는 힘찬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어서 오시오, 아짐. 회천 군농리 반지락이요, 달고 시원하고 맛있당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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